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미국 대형 원전 시장에 처음 진출할 통로를 확보했다. 한국이 최대 1200억달러, 약 163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원전 협력 틀에서 한국형 APR1400을 최대 2기 배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다만 이번 합의는 건설계약이나 투자 확약이 아닌 비구속 프레임워크다. 부지와 사업구조, 금융조건, 인허가, 최종 계약이 확정되지 않아 1200억달러 전체를 한국 기업의 수주액으로 볼 수는 없다.
웨스팅하우스 대주주 브룩필드자산운용이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미는 미국 연방정부 지정 부지에 대형 원전 8기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웨스팅하우스 AP1000 6기와 한수원 APR1400 최대 2기로 구성된다.
산업통상부가 밝힌 총사업비는 금융비용을 제외한 건설비 약 1000억달러와 비용 초과에 대비한 예비비 200억달러다. 사업은 AP1000 2기를 먼저 건설한 뒤 APR1400 최대 2기와 AP1000 2기를 함께 추진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AP1000 2기를 추가하는 순서로 검토된다.
올해 안에 최대 100억달러를 투입해 원자로 압력용기와 증기발생기, 원자로냉각재펌프 등 제작 기간이 긴 장주기 기자재를 선발주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법적 승인과 사업별 투자심사를 통과해야 실제 자금 집행이 가능하다.
APR1400의 미국 진출은 2025년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체결한 지식재산권 분쟁 타협협정에 대한 일회성 예외를 전제로 한다. 웨스팅하우스 주주사 카메코는 이번 예외가 미국에서 최대 2기의 APR1400을 건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시장 제한이 전면 해제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APR1400 최대 2기에 한해 길을 여는 구조이며, 웨스팅하우스는 지식재산권 사용료와 설계·조달 용역, 하도급, 장기 핵연료 가공 공급을 합쳐 원전 1기당 약 20억달러의 사업가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측이 웨스팅하우스 지분 5~10%를 취득하는 방안도 프레임워크에 포함됐다. 구체적인 투자 주체와 기업가치, 의결권, 경영 참여 조건은 정해지지 않았다. 지분 투자가 성사되면 양측의 이해관계를 장기적으로 묶을 수 있지만, 소수지분만으로 프로젝트 통제권까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한전과 한수원은 APR1400을 두고 웨스팅하우스와 벌여온 기술·수출통제 분쟁을 2025년 1월 종결했다. 당시 미국 에너지부는 합의가 양국 원전기업의 공동사업을 위한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지만, 비공개 타협협정이 북미 시장에서 APR1400의 독자 진출을 제한해 실제 미국 사업은 추진하기 어려웠다.
APR1400은 이미 2019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설계인증을 받았다. 이번 프레임워크가 최종 계약으로 이어지면 설계인증 이후 처음으로 미국 부지에 APR1400이 실제 배치되는 사례가 된다.
한국 원전산업의 실익은 163조원이라는 총액보다 사업별 역할 배분에서 갈릴 전망이다. AP1000 6기에서 국내 기업이 설계·조달·시공과 주기기 제작을 얼마나 확보하는지, APR1400 최대 2기의 사업주도권과 비용 초과 위험을 누가 부담하는지가 핵심이다.
브룩필드와 카메코는 프레임워크의 모든 조건이 비구속적이며 최종 협상에 달려 있다고 명시했다. 미국 연방부지 선정과 원전별 인허가, 금융조달, 전력구매계약까지 마쳐야 수주가 성립한다. 이번 발표는 확정 계약이 아니라 미국 시장의 닫힌 문을 제한적으로 연 출발점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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