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퓨처엠이 삼성SDI에 6조원 규모의 리튬인산철(LFP) 양극재를 장기 공급한다. 중국 기업이 장악한 LFP 소재 시장에서 국내 공급망을 확보해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원산지 규제에 대응하려는 포석이다.
포스코퓨처엠에 따르면 양사는 지난 6일 배터리용 소재 중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공급 기간은 2027년부터 2032년까지다. 지난 8월 합의한 LFP 양극재 19만t보다 물량을 두 배 이상 확대했으며, 정확한 최종 물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계약은 별도의 신규 계약이라기보다 2023년 체결한 NCA 양극재 계약의 품목과 금액을 다시 짠 정정계약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NCA 양극재 15조1964억원과 LFP 양극재 6조515억원을 합친 계약금액은 21조2479억원이다.
기존 계약금액 40조261억원보다 약 18조8000억원 줄었지만 공급물량은 최초 계약보다 약 45% 증가했다. 계약금액 감소는 리튬 가격에 연동된 판매단가 하락 영향이다. 공급량 확대가 곧바로 매출이나 수익성 증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향후 리튬 가격과 환율·가공비에 따라 금액도 달라질 수 있다.
계약의 무게중심은 전기차용 고니켈 NCA에서 ESS용 LFP로 이동했다. LFP는 NCA·NCM보다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열 안정성과 수명이 우수하고 철·인산을 사용해 원가 경쟁력이 높다. 부피와 무게의 제약이 전기차보다 작은 전력망용 ESS에 적합한 조합이다.
삼성SDI는 미국 인디애나주 스타플러스에너지 공장의 전기차용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고 NCA와 LFP 배터리를 순차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에너지 인프라 업체와 2조원대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올해 3월에도 미국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1조5000억원 규모 ESS 배터리를 수주했다.
소재 조달도 단일 업체 의존이 아닌 복수 공급 체제로 짜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 3월 엘앤에프와 2027년부터 3년간 1조6000억원 규모 LFP 양극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3년간 추가 공급받을 수 있는 옵션도 확보했다. 포스코퓨처엠 계약까지 더하면서 미국 ESS 수주 확대에 필요한 비중국계 LFP 양극재를 장기 선점한 셈이다.
미국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뿐 아니라 공급자의 지분·통제 구조와 원료 조달 경로다. 미국 재무부와 국세청은 금지외국기관(PFE)의 실질적인 지원이 포함된 ESS와 배터리 부품을 청정에너지 투자세액공제와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대상에서 제한하고 있다. 세액공제 적격성은 비PFE 소재와 부품의 직접비 비율을 따지는 방식으로 판정된다. 미 국세청 지침은 지분뿐 아니라 채무·라이선스·생산 통제 관계도 PFE 판단 요소로 규정한다.
따라서 포스코퓨처엠이 비PFE 공급자라는 사실만으로 완성 배터리의 세액공제 적격성이 자동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리튬과 인산철 전구체 등 원료의 원산지, 공급업체 지배구조와 기술계약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이번 계약의 의미도 완전한 ‘중국산 제로’보다는 미국 규정을 충족할 수 있는 소재 비중을 높이고 추적 가능한 공급망을 확보했다는 데 있다.
포스코퓨처엠은 기존 포항 NCM 양극재 생산라인 일부를 LFP용으로 전환해 올해 말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포항 영일만산업단지에는 연산 최대 5만t 규모의 LFP 전용 공장을 건설해 2027년 하반기 양산에 들어간다. 양사는 LMO 양극재와 인조흑연 음극재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했지만, 해당 품목의 물량과 계약금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삼성SDI에는 미국 ESS 수주를 실제 생산으로 연결할 소재 기반이, 포스코퓨처엠에는 장기 물량을 바탕으로 공장 가동률과 증설 시기를 조정할 근거가 생겼다. 중국산 LFP의 가격 우위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렵지만 미국 세액공제와 공급망 규제가 강화될수록 가격보다 원산지와 계약 안정성이 수주를 가르는 비중은 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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