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페루 K2 54대 수출 제동…국방장관 “예산·사업계획 없다, 국제입찰 필요”

현대로템의 페루 K2 전차 54대 수출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페루 정부가 2027년 예산에 구매비를 반영하지 않았고 육군도 투자사업안을 내지 않은 데다, 현직 국방장관이 향후 조달은 국제경쟁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페루 일간 라레푸블리카에 따르면 라파엘 호르헤 벨라운데 요사 국방장관은 7일 “구체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의 판매 의지는 있지만 사업 예산이 없고, 의회에 제출한 2027년 예산안에도 구매비가 들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벨라운데 장관은 페루 육군이 K2 구매를 위한 투자사업안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다. K2의 성능과 현대로템과의 전략적 제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 정도 규모의 구매라면 국제경쟁 절차가 먼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페루 의회가 공개한 5일 추가경정예산 심사 자료도 예산 공백을 뒷받침한다. 국방부가 요청한 18억3200만솔의 용처는 군경연금, F-16 블록70 2단계, 해군 연료, 육군 공병장비, 남극 탐사였으며 전차 도입은 빠졌다.

현대로템이 페루 육군·육군조병창(FAME)과 지난해 12월 9일 맺은 문서는 확정 공급계약이 아니라 총괄합의서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도 “최종 계약 사항이 아니며” 사업 규모와 금액 등은 후속 이행계약에서 확정한다고 명시됐다.

현대로템은 당시 K2 54대와 K808 차륜형장갑차 141대를 공급 대상 물량으로 제시하면서도 “후속 이행계약 체결 후 본 사업 착수”라고 밝혔다. 페루 국방부 역시 이를 확정 구매가 아닌 ‘향후 획득을 위한 전략적 합의’로 표현했다.

합의서에 품목·물량·예산이 담겼다는 설명과 페루 정부의 실제 세출예산 배정은 다른 단계다. 54대는 후속 협상의 목표 물량일 뿐, 가격·납기·지급조건이 확정된 수주 물량은 아니다.

재원 부족은 지난 7월에도 드러났다. 페루 국방부는 엘니뇨 대응을 위한 예산 재조정으로 절차를 계속하지 못했으며 “현대로템과 어떤 계약도 체결되지 않았다”고 라레푸블리카에 답했다.

당시 페루에 반입된 K2 3대는 54대 계약의 인도분이 아니라 시연용 장비였다. 이후 기동 시범까지 열렸지만 투자사업 승인이나 예산 배정, 국제입찰 공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장관 발언대로라면 앞으로 육군의 기술요구안과 투자사업 수립, 예산 확보, 국제경쟁, 기종 선정, 이행계약 체결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아직 국제입찰이 시작된 것은 아니며 경쟁 대상과 일정도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국내 증권가의 낙관론과도 엇갈린다. DS투자증권은 장관 발언 하루 전인 6일 새 정부가 전임 정부의 방산사업을 승계한다는 전제 아래 2027년 1분기 계약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예산과 투자사업안이 없다는 당국의 확인으로 일정 추정의 전제가 흔들린 셈이다.

다만 사업이 공식 취소되거나 K2가 후보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 현대로템과 FAME의 전략적 제휴도 유지되고 있어 페루 육군이 사업을 다시 세우고 K2가 국제경쟁을 통과하면 계약 가능성은 남는다.

별도로 체결된 K808 30대 계약과 이번 K2 54대 구상도 구분해야 한다. 페루 FAME에 따르면 지난 7월 공개된 K808 6대는 2024년 확정 계약한 30대의 일부다. 총괄합의서에 적힌 후속 K808 141대와 K2 54대는 아직 이행계약 전 단계다.

오세진

오세진 기자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