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 페루 K2·K808 ‘2조5000억’ 이행계약 상반기 넘겨 표류…폴란드는 3차 협상 가속

현대로템이 지난해 12월 페루 육군과 K2 전차 54대·K808 차륜형장갑차 141대 공급 총괄합의서를 맺은 지 7개월이 지났지만, 법적 구속력을 갖는 이행계약(본계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업계가 목표로 봤던 시점은 올 상반기였다. 반면 폴란드에서는 K2PL 전차 210대를 포함한 3차 이행계약 협상이 막바지 실무 단계로 접어들며 속도를 내고 있어 두 나라의 진행 속도가 엇갈린다.

현대차그룹 발표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2025년 12월 9일 페루 리마에서 페루 육군, 페루 육군 조병창과 K2 전차 54대·K808 141대(총 195대) 공급 총괄합의서를 체결했다. 계약 규모는 매체마다 17억~20억달러(약 2조3000억~2조7000억원)로 다소 엇갈려 보도됐고, 국내에서는 대체로 2조5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총괄합의서는 공급 의사와 대략적 물량·조건을 확인하는 문서일 뿐, 가격·인도일정·대금지급조건까지 법적으로 확정하는 이행계약과는 계약 단계 자체가 다르다. 이행계약까지 이어지면 국산 전차의 중남미 첫 수출이자 완성 전차 수출로는 폴란드에 이은 두 번째 사례가 된다.

이행계약이 늦어진 배경은 두 갈래다. 첫째는 페루의 정치 일정이다. 페루는 지난해 말 탄핵 정국을 거쳐 올해 대선을 치렀고, 케이코 후지모리 당선인이 7월 28일 국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며 5년 임기를 시작했다. 디지털데일리에 따르면 페루 의회는 확실한 다수당이 없는 다당 구도라 대통령 탄핵이 정치적 담합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여서, 정권 이양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대형 국방예산 집행에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둘째는 금융 조건이다. 리포테라 보도에 따르면 페루의 국가신용등급은 BBB(투자적격)지만 2조원대 무기를 자체 예산으로 즉시 결제할 여력은 없어, 국책은행 차관·수출보증·수출금융 지원을 묶은 금융 패키지 확정이 계약 성사의 결정 변수로 꼽힌다.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폴란드 수출 때 7조2000억원 규모 금융을 지원해 K2 전차·K9 자주포·FA-50 경공격기·K239 천무를 묶은 지상·공중 무기체계 일괄 수출을 성사시킨 전례가 있어, 유사한 모델이 페루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긍정적 신호도 있다. 나우뉴스에 따르면 수출용 K2 전차 최소 2대와 K808 장갑차 6대가 최근 페루에 도착했고, 이달 말 열리는 리마 독립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등장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페루 육군은 참가 여부를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한국산 장비가 현지에 도착한 것 자체는, 계약 체결의 정치적 명분을 쌓는 절차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은 기간 폴란드에서는 계약 단계가 한 칸씩 착실히 전진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2022년 7월 폴란드 군비청과 최대 1000대 규모의 K2 계열 전차 도입 기본계약을 맺었고, 이를 뼈대로 1차 이행계약에서 K2 180대를, 2025년 8월 2차 이행계약에서 K2 추가 물량과 폴란드형 K2PL 등을 묶어 65억달러(약 8조7000억원) 규모를 체결했다. 더구루와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7월 9일, 현대로템이 폴란드 기자단을 창원 공장에 초청해 진행 상황을 공개한 내용을 전한 데 따르면, 3차 이행계약은 막바지 실무 협의 단계에 들어섰고 규모는 K2PL 전차 210대에 구난전차 등 계열전차 35대를 더한 245대다. 두 매체는 이 계약이 연내 체결되면 납품·이행 기간이 2026년부터 2034년까지로 설정된다고 전했다. 한국이 엔진·변속기 등 핵심 부품을 생산해 수출하고 폴란드 방산업체 ZM 부마르-와벵디가 차체 조립과 최종 통합을 맡는 분할생산 방식의 기술이전 폭·현지화 비율이 쟁점으로 꼽힌다.

같은 회사가 한쪽은 총괄합의서 단계에서 멈춰 있고 다른 한쪽은 세 번째 이행계약을 눈앞에 뒀다는 대비는, 총괄합의서(프레임워크)와 이행계약(실행계약)이 결코 같은 무게의 뉴스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총괄합의서 체결은 “수주”로 부르기엔 이르고, 실제 매출·수주잔고에 잡히는 시점은 이행계약 서명 이후다. 아주경제에 따르면 대신증권은 최근 “폴란드 물량 일부가 이연됐다”며 현대로템 목표주가를 낮췄고, 2분기 연결 매출은 1조6060억원(전년비 13.3%↑)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2324억원으로 전년비 9.7% 줄어 시장 기대에 못 미쳤다. 다만 2분기 말 수주잔고는 30조4046억원으로 창사 이래 처음 30조원을 넘어섰다. 증권가는 결국 페루·이라크·루마니아 등 이른바 K2 2차 도입국의 이행계약 성사 여부가 향후 기업가치를 가를 변수라고 보고 있다. 총괄합의서와 이행계약 사이의 시차가 이 회사 실적 변동성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오세진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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