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루마니아 차세대 보병전투장갑차(IFV) 사업에서 독일 라인메탈에 밀려 탈락했다. 가격과 현지생산 비율 모두 한화 쪽 조건이 앞섰다는 게 국내 매체 보도로 확인됐는데도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방산조달이 역내 우선 원칙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이트·더구루 등 보도를 종합하면 한화에어로는 레드백(K21 Redback) 298대를 총 28억유로(대당 약 950만유로)에 공급하고, 엔진·파워팩 등 핵심 부품까지 루마니아 현지에서 생산해 현지화율을 최대 8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제안했다. 라인메탈은 대당 단가를 1100만유로로 더 높게 제시하면서도 현지화율은 40%에 그쳤다. 헝가리 잘러에게르세그에 이미 링스(Lynx) KF41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데도 루마니아는 지난 4월 29일 라인메탈의 링스를 사업자로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규모는 EU 방위산업 대출 프로그램 ‘SAFE’로 조달하는 232대(약 25억5000만유로)와 자국 예산으로 별도 도입하는 66대를 합쳐 298대, 약 33억유로(7월 27일 기준 1유로=1667원 환산 약 5조5000억원) 안팎으로 보도된다. 경쟁 상대인 스웨덴 BAE시스템즈 CV90,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사를 둔 범유럽 방산업체 GDELS(General Dynamics European Land Systems)의 ASCOD 2도 함께 탈락했다.
탈락 배경엔 절차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다. 케이피아이뉴스는 루마니아 당국이 이번 사업 관련 공식 사전정보요청서(RFI)를 라인메탈에만 보내 한화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이 입찰 기회 자체를 제대로 못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더구루도 루마니아 군당국과 라인메탈의 비공개 회동을 문제 삼았다. 다만 이 부분은 단일 매체 보도 수준이라 루마니아 국방부의 공식 확인은 아직 없다.
더 구조적인 장벽은 EU의 SAFE(Security Action for Europe) 제도 자체에 있다. SAFE는 회원국이 공동조달에 EU 대출을 쓰려면 부품의 65% 이상을 EU·EEA·우크라이나산으로 채우도록 규정한다. 한국처럼 EU와 별도의 안보·방산 파트너십 협정이 없는 제3국 기업은 이 대출을 활용한 사업에 원천적으로 접근이 제한된다. 라인메탈의 40%가 한화의 80%보다 낮은 조건인데도 이긴 배경에는 이런 제도적 우대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역설적으로 라인메탈이 약속한 40%조차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이코노믹 보도에 따르면 라인메탈은 이번 IFV 계약을 포함해 루마니아와 맺은 총 4건, 9조9000억원 규모 패키지 계약을 두고 오히려 현지생산 비율을 대폭 낮추거나 사실상 0%로 축소해달라고 재협상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화 공약이 수주전에서는 승부수였다가, 수주 이후엔 협상 카드로 바뀌는 유럽 방산조달의 관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화에어로는 개별 입찰의 현지화율 숫자를 더 높이는 대신, 아예 유럽 안에 생산 거점을 박아 넣는 쪽으로 전략을 틀고 있다. 폴란드 K9·천무 생산기지에 이어 루마니아에서도 지난 2월 K9 자주포·K10 탄약운반장갑차 생산공장 ‘H-ACE 유럽'(둠보비차주 페트레슈티)을 착공해 현지화율 80% 목표를 걸었다. 다만 이는 이미 수주한 K9·K10 사업(54문·36대, 약 1조4000억원)에 해당하며, 이번 IFV 사업과는 별개 계약이다.
해설 SAFE는 EU가 회원국 공동 방산조달에 저리로 빌려주는 최대 1500억유로 규모 대출 프로그램이다. 부품의 65% 이상이 EU·EEA·우크라이나산이어야 대출을 쓸 수 있어, 협정 없는 제3국 기업은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이 재원을 쓰는 사업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현지생산 비율”과 “SAFE 적격 비율”은 다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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