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6조7000억’ CHIPS 보조금 지분전환 사정권…SK하이닉스도 인텔식 압박

미 상무부가 인텔에 적용한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의 ‘현금→지분’ 전환 방식을 다른 수혜 기업으로 확대할 조짐을 보이면서, 텍사스 테일러 파운드리에 47억4500만달러(약 6조7000억원, 2026년 8월 환율 1,420원 기준)를 받은 삼성전자와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에 4억5800만달러(약 6500억원)를 받은 SK하이닉스가 사정권에 들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지난해 8월 CNBC 인터뷰에서 “우리 돈에 대해 지분을 받아야 한다”며 마이크론·TSMC·삼성전자를 직접 거론했다. 다만 인텔과 한국 기업의 계약구조 자체가 달라 같은 방식이 기계적으로 옮겨붙기는 쉽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인텔 뉴스룸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22일 확정한 지분전환 계약은 성격이 명확하다. 아직 지급되지 않은 CHIPS 보조금 잔액 57억달러에 국방 관련 ‘시큐어 인클레이브’ 프로그램 자금 32억달러를 더해 총 89억달러(약 12조6000억원)를 주당 20.47달러에 보통주로 바꿔 지분 9.9%(4억3330만주)를 확보하는 구조였다. 의결권은 이사회 의결과 함께 행사하는 수동적 투자로 한정했고, 파운드리 사업 지분이 51% 밑으로 떨어지면 주당 20달러에 추가 5%를 살 수 있는 5년 만기 워런트를 얹었다.

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설비 반입·양산 개시 같은 마일스톤 단계별로 보조금이 순차 집행되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애초 64억달러를 통보받았다가 총투자액을 440억달러에서 370억달러로 줄이면서 최종 47억4500만달러(26% 삭감)로 조정됐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후공정 공장 투자 38억7000만달러에 대해 보조금 4억5800만달러와 대출 5억달러를 확정했다. 두 계약 모두 인텔처럼 ‘잔여 미지급분을 지분으로 전환한다’는 조항 자체가 없다. 지분전환은 계약서에 없던 조건을 사후에 얹는 셈이어서, 이미 서명된 협약을 재개정해야 하는 절차적 문턱이 인텔 사례보다 높다.

한국 대통령실은 지난해 8월 21일 강유정 대변인 명의로 “접촉받은 한국 기업이 없고, 아직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없어 지분전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강 대변인은 그달 말로 예정돼 있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의 지렛대로 쓰려는 루머로 의심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컷뉴스·글로벌이코노믹 보도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의 보조금 계약은 2024년 12월 확정됐고 설비 반입·양산 개시 등 마일스톤 단계별로 순차 집행되는 구조라는 점까지는 확인되지만, 실제로 얼마가 집행됐는지는 어느 보도에서도 확인되지 않았다.

지분율 규모부터가 인텔과 같아지기 어렵다. 인텔의 지분전환액 89억달러는 당시 주가 기준 회사 가치의 9.9%에 해당했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시가총액이 인텔과 비슷하거나 더 큰 반면 보조금 절대액은 각각 47억달러·4억6000만달러 안팎으로 훨씬 작다. 같은 방식을 기계적으로 적용해도 미 정부가 확보할 지분율은 1%에도 못 미칠 공산이 크다. 다만 정확한 비율은 전환 시점의 주가·환율에 따라 달라져 지금 확정할 수는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배구조다. 인텔은 미국 국적 상장사라 자국 정부의 지분 참여가 국내법 테두리 안에서 처리되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외국 정부인 미국이 지분을 갖는 순간 외국인투자촉진법상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 심사, 자본시장법상 대량보유·경영권 영향목적 신고 같은 절차가 겹겹이 걸린다. 상무부 산하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상무부는 지난 7월 30일 글로벌파운드리·케플러 등 7개 기술기업과 최대 8억7400만달러 규모의 ‘의결권 없는 소수지분’ 매입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 금액은 실제 집행액이 아니라 상한선이고, 이름이 오른 7개사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인텔식 지분전환 틀을 CHIPS 수혜 기업 전반으로 넓히려는 상무부의 방향성 자체는 이번 LOI로 한층 뚜렷해졌다.

해설 — 계약 단계가 MOU·기본계약·실행계약으로 갈리듯, 보조금 지급 방식도 ‘무상 교부(grant)’와 ‘지분 전환(equity conversion)’은 법적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인텔 사례는 계약서에 없던 조건을 사후 협상으로 얹은 것이라 선례일 뿐 강제력은 없고, 한국 기업 계약에 같은 조항을 넣으려면 기존 협약 재개정과 양국 정부 간 별도 합의가 필요하다.

오세진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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