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한수원, 美원전 8기 비구속 프레임워크 참여…개별 사업 미확정

한국과 미국이 APR1400 2기와 웨스팅하우스 AP1000 6기 등 대형 원전 8기를 미국에 건설하는 방향의 ‘한미 원전 프레임워크’에 합의했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은 프레임워크 참여 주체로 제시됐지만, 부지와 사업자, 공사 일정, 기업별 계약 금액은 정해지지 않았다. 최대 1200억달러는 사업 재원 한도일 뿐 국내 기업의 확정 수주액이 아니다.

재정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원전 8기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은 최대 1200억달러다. 건설비 1000억달러와 공사비 증가에 대비한 예비비 200억달러로 구성된다. 9월 30일 원·달러 매매기준율인 달러당 1358.4원을 적용하면 약 163조원이다.

프레임워크에는 한미 양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 한전, 한수원이 참여할 예정이다. AP1000 2기를 먼저 추진한 뒤 APR1400 2기와 AP1000 2기, 마지막 AP1000 2기를 순차적으로 개발하는 구상이다. 카메코 공식 발표는 두 노형이 미국 정부가 지정하는 연방 부지에 배치될 구상이라고 밝혔다. 다만 AP1000 6기를 3개 부지에 각각 2기씩 배치한다는 구체안은 재정경제부와 카메코 공식 발표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2025년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타협협정에 예외를 두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웨스팅하우스가 타협협정 세부 조건을 비공개로 둔 가운데, 재정경제부는 기존 협정으로 미국 내 APR1400 사업 참여가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프레임워크에서는 한국의 전략투자 재원을 활용하는 APR1400 2기에 대한 일회성 면제가 추진된다.

APR1400은 이미 미국 인허가의 첫 관문을 넘었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2019년 한전과 한수원이 신청한 APR1400 표준설계를 인증했다. 미국 사업자는 이 설계를 인용해 건설·운영 통합허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설계인증 자체가 특정 부지의 원전 건설을 승인한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첫 번째 몫은 APR1400의 설계와 사업관리, 주기기 제작, 시공이다. 기존 팀코리아 체계를 적용하면 한전·한수원이 사업을 총괄하고 한국전력기술이 종합설계와 원자로계통 설계, 두산에너빌리티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주기기 제작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전력기술은 국내 APR1400과 UAE 바라카 원전에서 종합설계와 원자로계통 설계를 수행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APR1400뿐 아니라 AP1000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를 제작한 실적이 있어 두 노형 모두에서 일감을 확보할 후보로 꼽힌다. 현대건설도 2022년 웨스팅하우스와 AP1000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맺고 프로젝트별 EPC 우선 참여 협상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프레임워크에는 국내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의 명단이나 최소 발주 물량이 명시되지 않았다.

APR1400 2기를 한국 기업이 전부 가져오는 구조도 아니다. 웨스팅하우스 공동 소유주인 캐나다 카메코는 공식 발표에서 웨스팅하우스가 APR1400 한 기당 약 20억달러의 가치를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2기 합계 40억달러, 9월 30일 환율 기준 약 5조4000억원이다.

이 몫에는 지식재산권 사용료와 엔지니어링·조달 서비스, 하도급 기회, 장기 핵연료 제작 계약이 포함된다. 특히 웨스팅하우스가 핵연료 제작을 장기간 맡도록 보장된다는 점은 한전원자력연료 등 국내 핵연료 공급망의 참여 범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의 순수 몫을 계산하려면 APR1400 총사업비에서 웨스팅하우스 역무와 미국 현지조달 비중을 먼저 분리해야 한다.

두 번째 몫은 전체 8기 가운데 6기를 차지하는 AP1000 사업에서 나온다. 한국 정부는 한국 시공사와 기자재 업체가 AP1000 건설에도 참여하고, 장기 제작기간이 필요한 기자재에 한국산 제품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이 AP1000 시공을 주도하면 유럽 등 제3국 공동 진출과 웨스팅하우스 공급망 편입에도 유리해질 수 있다.

그러나 AP1000의 노형 공급자와 핵심 기술 주체는 웨스팅하우스다. 한국 기업의 수익은 원자로 판매가 아니라 개별 EPC와 기자재 공급계약에서 발생한다. 설계 책임과 공사비 초과 위험, 지체상금 부담을 누가 지는지에 따라 같은 수주액이라도 실제 이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측은 연말까지 최대 100억달러를 선지급해 원자로용기와 증기발생기 같은 장기납기 품목을 조기 발주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다만 상업성 심사와 국회 보고 등 국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선지급 대상 업체와 한국산 기자재 비중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기업의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 방안도 프레임워크에 포함됐다. 지분 5~10%라는 수치는 연합뉴스가 산업통상부의 국회 비공개 보고를 인용해 보도한 범위이며, 재정경제부 공식 발표에는 구체적인 지분율이 담기지 않았다. AP1000 사업에서 발생하는 상업적 이익을 지분 배당과 기업가치 상승으로 공유하려는 구조지만, 인수 주체와 가격, 의결권, 기존 주주의 지분 조정 방식은 후속 협상 사항이어서 현재로서는 수익보다 추가 투자 부담이 먼저 발생한다.

브룩필드와 카메코는 이번 프레임워크의 모든 조건이 비구속적이며 최종 협상 대상이라고 명시했다. 부지와 사업구조, 운영사, 착공 일정도 정해지지 않았다. 개별 사업은 상업성이 확인되고 미국 인허가와 한국의 법정 절차를 통과해야 실제 계약으로 전환된다.

이번 합의는 한전과 한수원의 미국 내 APR1400 사업 참여를 제한했던 제도적 장벽을 걷어낼 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한국 자금의 투입 방향만 제시됐을 뿐 한국 기업에 돌아올 발주액과 이익은 확정되지 않았다. 성패는 APR1400 2기의 국내 공급 비중, AP1000 6기의 EPC·기자재 계약 규모, 웨스팅하우스에 지급할 보상과 공사비 초과 위험을 후속 계약에서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렸다.

오세진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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