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투자자문사가 고객과 규제펀드의 암호자산을 직접 보관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자가수탁에 앞서 적격 수탁기관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후 최소 분기마다 이를 서면으로 재검토하는 조건이다. SEC가 지난 1일 공개한 암호자산 수탁 규칙안에 담긴 내용이다.
규칙안에서 자가수탁은 투자자가 개인 지갑에 자산을 보관하는 구조가 아니다. SEC 등록 투자자문사가 고객이나 규제펀드를 대신해 암호자산 접근과 거래 실행에 필요한 개인키 또는 그 일부를 직접 보유하는 것을 뜻한다.
투자자문사 자가수탁은 일반 고객뿐 아니라 규제펀드 계좌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규제펀드는 등록 관리형 투자회사와 사업개발회사(BDC)를 뜻하며, 단위형 투자신탁(UIT)과 액면금액증서회사는 이번 자가수탁 규칙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모든 암호자산에 일괄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자문사 규칙은 고객의 자금 또는 증권에 해당하는 암호자산, 펀드 규칙은 증권이나 이와 유사한 투자자산으로 범위가 제한된다. 규제펀드가 이 경로를 이용하려면 투자자문사가 자가수탁 요건을 충족하고 펀드 이사회가 수탁 구조를 감독해야 한다.
자가수탁을 선택한 투자자문사는 해당 암호자산을 맡을 적격 수탁기관이 없다는 결론을 최초 보관 전과 이후 최소 분기마다 서면으로 갱신해야 한다. 수탁기관이 새로 생긴 사실을 확인하면 합리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자산을 이전해야 한다.
보호 장치도 붙는다. 개인키 관리와 2명 이상의 공동 거래 승인, 고객별 전용 온체인 주소 분리, 사이버보안 통제가 요구된다. 자문사는 자가수탁 개시 후 6개월 이내에 독립 회계사가 작성한 최초 내부통제보고서를 받아야 하며, 이후 자가수탁을 계속하는 동안 매년 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펀드 이사회는 키 접근자와 수탁 구조를 감독하고 자문사의 적격 수탁기관 부재 판단을 정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SEC는 조건을 충족한 주(州) 신탁회사도 암호자산 수탁기관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자문사와 규제펀드는 신탁회사가 주 은행당국으로부터 암호자산 수탁 권한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감사 재무제표와 내부통제보고서를 매년 검토해야 한다.
기존 수탁 규칙은 은행 등 허용된 제3자 수탁기관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새 암호자산이 등장해도 이를 지원하는 적격 수탁사가 없거나 서비스 도입이 늦어 투자 전략 자체가 막히는 문제가 있었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기존 규칙이 암호자산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자가수탁 예외와 주 신탁회사 경로가 함께 열리면 투자자문사가 고객과 규제펀드에 제공할 수 있는 암호자산 전략의 범위가 넓어지고 기존 전문 수탁사와의 경쟁도 강해질 수 있다. SEC 역시 이번 안이 투자자문사의 암호자산 투자 조언을 가로막던 규제상 장애를 낮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자가수탁은 비용 없는 무수탁 모델이 아니다. 고객별 주소 분리와 복수 승인, 독립 회계사의 내부통제 검증과 이사회 감독 체계를 갖춰야 해 중소 자문사에는 비용 부담이 될 수 있다. 개인키가 유실되거나 탈취되면 자산 회수가 어려워 제3자 수탁기관이 맡던 운영 위험도 자문사 내부로 옮겨온다.
이번 조치는 확정 규칙이 아닌 제안 단계다. SEC는 연방관보 게재 후 60일 동안 의견을 받은 뒤 최종안을 결정한다. 기관투자의 문을 넓히는 효과는 최종 규칙이 자가수탁의 예외 범위와 책임 기준을 어디까지 유지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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