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카카오·네이버 3파전…법 통과 전 원화 스테이블코인 레일 선점

해외 스테이블코인 시장 전체 시가총액이 지난 6월 한 달 새 77억달러(약 10조7000억원) 줄며 2022년 테라·루나 사태 이후 최대폭으로 위축됐다. 파이낸스피즈 등 외신에 따르면 시가총액은 3120억달러로 전월 고점 대비 3% 빠졌고, 5월 이후 누적으로는 100억달러 넘게 증발했다. 그런데 정작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도 통과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케이뱅크·카카오·네이버 3개 진영이 결제 레일부터 먼저 깔고 있다.

크립토브리핑·크립토뉴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6월 위축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 가격이 연중 저점권에서 횡보하며 온체인 수요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다만 탈동조화(디페깅) 사고 없이 벌어진 위축이라 2022년 테라 붕괴 때 한 분기 만에 20% 가까이(339억달러) 증발한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평가다.

역설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온체인 거래량은 6월 1조7900억달러로 전월 대비 63% 늘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스테이블코인 한 단위가 한 달에 약 6번 회전한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2년 전의 두 배다. 공급은 줄어도 회전율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는 뜻이다.

국내 사정은 정반대다. 법이 없는데도 3개 진영이 앞다퉈 결제 인프라부터 짓고 있다. 첫 번째는 케이뱅크·홍콩 해시키그룹·블록체인 기업 비피엠지다. 디지털데일리 등에 따르면 세 회사는 지난 21일 스테이블코인 기반 금융 인프라 구축을 위한 3자 업무협약을 맺고 한국·홍콩 간 국경 간 송금 모델의 실현 가능성을 공동 검토하기로 했다. 케이뱅크가 국내 자금흐름·리스크·컴플라이언스를, 해시키그룹이 해외 기관 네트워크를, 비피엠지가 미국 자회사 아라코어를 통한 기술 구현을 맡는 구조다.

두 번째는 카카오·토스다. 비즈니스포스트·파이낸셜뉴스 등에 따르면 카카오·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와 토스·토스뱅크는 지난 23일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인 미국 서클과 각각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고, 서클의 결제 인프라를 활용한 해외송금·가맹점 정산 등 블록체인 기반 결제 인프라 구축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다만 두 MOU 모두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인 실행 모델이나 출시 일정을 제시할 수 없는 단계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5월 컨퍼런스콜에서 지갑 이용자 4000만명을 기반으로 발행부터 유통까지 직접 잡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 번째는 네이버파이낸셜·두나무·하나금융이다. 디일렉·ZDNet코리아 등에 따르면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은 1대 2.54 비율의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합병을 추진 중이며, 네이버는 두나무 경영진 위임분을 포함해 총 46.5%의 의결권을 확보할 예정이다. 여기에 인베스트조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6.55%(228만4000주)를 약 1조33억원에 인수해 두나무 4대 주주로 올라섰다.

국민·신한·우리·농협·기업·수협·iM뱅크·케이뱅크 등 8개 은행도 별도로 합작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코노믹리뷰 등이 보도했다. 다만 이 컨소시엄에는 이미 케이뱅크가 들어 있어, 독립된 네 번째 진영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진영이 은행권 전체로 저변을 넓히는 모양새에 가깝다.

입법은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과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지난해 7월 28일 각각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요건·이용자 보호·감독 권한을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금융위원회도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을 10월 국회 제출을 목표로 준비 중이지만, 아직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한정할지 빅테크·거래소까지 열어줄지조차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온도차도 변수다. 이재명 정부는 가상자산 제도권 편입과 산업 육성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은행은 통화 안정성과 자본유출 우려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법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통과될지 아무도 장담 못 하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3개 진영이 먼저 움직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레일과 유통망을 먼저 깐 쪽이 이용자 접점과 네트워크 효과를 선점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법이 통과된 뒤 인프라를 짓기 시작하면 이미 지갑·가맹점·해외송금 채널을 확보한 경쟁자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계산이 진영별 MOU 러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 경쟁은 규제 공백을 전제로 한 베팅이다.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제한하는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카카오·토스·두나무 진영의 사업모델 자체가 재설계돼야 할 수 있고, 반대로 빅테크·거래소까지 허용하는 쪽으로 정리되면 은행권 컨소시엄의 우위는 약해진다. 법 통과가 예상보다 늦어지거나 조건이 지금 검토 중인 모델과 어긋나는 순간, 지금 쌓은 MOU와 준비 조직이 그대로 매몰비용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우려하는 통화주권·자본유출 이슈가 법안 심사 과정에서 반영되면 준비자산 규제나 해외 송금 한도가 지금 진영들이 그리는 그림보다 훨씬 보수적으로 정해질 가능성도 있다. 해외 시장이 테라 이후 최대폭으로 식어가는 지금, 국내 3파전이 규제 공백기의 합리적 선점 전략인지 과열된 베팅인지는 10월 금융위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순간 갈릴 것으로 보인다.

백승호

백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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